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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행전 “새로운 차원을 여는 슬픔” (마 5:4)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0-08-21 11:15:07

행복행전 새로운 차원을 여는 슬픔


본문에서 예수님이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실 때 애통하다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다음과 같이 크게 3가지로 사용됩니다.

 

첫째, 삶에서 일어나는 일로 인해 슬퍼하는 자들입니다. 뼈아픈 상실을 경험했을 때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눈물은 치유의 물이라고 하지요.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하면 마음의 병이 생기기도 합니다. 성경은 슬피 우는 것을 부끄러운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150편이나 되는 시편에는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는 내용이 절반이 넘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인물들도 대부분 애통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어린 아기는 잘 웁니다. 자신이 약하고 할 줄 아는 게 없다 보니 그저 웁니다. 배고파서, 기저귀가 젖어서, 아파서우는 것이 엄마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 아기가 지닌 무기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것은 아기가 울 때 엄마들은 울음소리만으로 아기가 왜 우는지를 식별해내고 우는 소리가 조금이라도 들리면 단숨에 달려가 아이를 품에 안고 도와줍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엄마들이 이렇다면, 우리 하나님은 어련하실까요? 기도의 간절함이 내 안에 차오르다 보면 어느새 울며 기도하게 됩니다. 많은 말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저 가슴을 치며 울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그 눈물은 하나님의 마음을 녹입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느끼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 때에야 너희는 가장 소중한 분의 품에 안길 수 있다.” (메시지 성경, 마태복음 5:4)

 

둘째, 자신의 죄로 인해 슬퍼하는 자들입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은 나의 죄와 악에 눈이 열려져서 고통스러워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오시니까 어두운 내 모습이 보이는 것입니다. 부요한 자 같으나 헐벗은 내 영적 몰골이 보입니다. 그래서 아파하고 고통하며 신음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애통을 가진 사람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애통해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메말랐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화석같이, 돌같이 굳어져 가는 마음은 아닌가요?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입니다(시편 51:17). 세상은 죄를 가볍게 여기고 웃어넘기라고 가르칩니다. 죄에 대한 의식이 희미해져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그 죄로 인해 마음을 찢을 줄 알라고 하십니다. 죄를 미워하고 죄로 인해 애통해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어느덧 죄로부터 멀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행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위해 슬퍼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세상이 돌아가는 현실을 보며 마음 아파하고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위해 애통의 눈물을 흘립니다. 가족으로부터 시작해 교회 공동체와 이웃, 나라와 민족, 더 나아가 열방까지도 품고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위해 눈물로 기도합니다. 이러한 복 있는 자들은 자신의 슬픔을 위로받는 차원을 넘어서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섬기는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들이요, 위로의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물이 복이 있다 하십니다. 이제는 삶의 질병과 고난이라는 어려움 속에서 흘리는 눈물을 위로받고, 자신이 지은 죄로 아파하며 통회하는 성숙된 신앙의 눈물이 메마르지 않아야겠습니다. 나아가 나의 지경을 넘어 이웃과 공동체, 나라와 열방을 위해 하나님 나라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눈물로 씨앗을 심으십시오. 그 길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주님의 기쁨이요, 진정 행복한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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